경기도와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이 9일 개최한 제2회 2026 판다포럼에서 류종기 미국 RIMS 리스크관리협회 한국대표가 패널로 참석해 도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위한 새로운 위기 관리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류 대표는 이번 패널토의에서 과거의 통계나 확률 모델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작금의 상황을 '심층적 불확실성'의 시대로 정의하며 대응 전략을 주문했다.
류 대표는 전문가들의 집단 지성이 모인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조차 2020년 초 발생한 팬데믹을 단기 위기 순위에서 예측하지 못한 사례를 들며, 수많은 변수가 얽힌 현대 사회에서는 발생 가능성을 점치는 예측 자체가 점차 의미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클라우스 슈밥 전 세계경제포럼 회장의 저서를 인용해 오늘날의 글로벌 환경을 상호 연관성, 속도, 복잡성이라는 세 가지 특징으로 설명했다. 하나의 국지적 이슈가 소셜 미디어와 결합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전파되고, 다른 여러 변수들과 복잡하게 얽히며 일파만파 확산하는 것이 현대 리스크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플래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류 대표는 2012년 에쓰오일(S-OIL)의 위기 관리 컨설팅 사례를 소개하며, 당시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대주주인 사우디 아람코가 홍해 쪽의 얀부항으로 이어지는 1300km 길이의 대체 우회 파이프라인을 건설한 것이 성공적인 비즈니스 연속성 확보의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류 대표는 기업들이 위기 대응에 소극적인 이유로 '준비의 역설'을 꼽았다. Y2K 사태처럼 철저한 사전 대비로 위기를 무사히 넘기면 오히려 그동안의 투자를 낭비로 여기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한반도의 전쟁이나 긴장 상태와 같은 지정학적 안보 위협을 금기시하거나 막연히 체념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동의 위기를 반면교사 삼아 한반도발 지정학적 갈등 시나리오 역시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가장 큰 고민거리인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자원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혁신적인 타개책으로 제시했다. 과거에는 거시적 위기를 분석하고 시나리오 플래닝을 수립하는 작업이 전담 전략팀을 갖춘 대기업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챗GPT, 클로드, 제미나이 등 대규모 언어 모델(LLM) 서비스가 고도화되면서, 관련 아티클과 데이터만 입력하면 중소기업 실무자나 대표이사 혼자서도 충분히 변화 동인을 뽑아내고 주요 지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류 대표는 위기 대응 관점의 전환을 촉구했다. 이제는 특정 위기의 발생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따지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위기는 언제든 발생한다는 전제하에 기업의 핵심 자산과 공급망을 보호할 방안을 상시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불확실성을 돌파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당부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